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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 리더십을 버리고 더 큰 성공을 얻다 by radiobook

"2015년 3월, 10억 원 투자를 받은 뒤 2016년 6월 다시 20억 원 투자 유치에 성공했어요. 투자가 확정됐다는 벤처캐피털(VC)의 전화를 받고 이 소식을 회사에 공유했는데 아무도 좋아하는 사람이 없는 거예요. 저는 들떠 있는데 곳곳에서 한숨 소리만 들리고. 이때 충격은 너무 커서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예요. 그리고 이 사건이 저의 사업 철학을 완전히 바꾼 계기가 됐어요. - 노대영 집꾸미기 대표"

노대영 집꾸미기 대표는 대학생이던 2006년 '후플'이라는 서비스로 처음 사업을 시작했다. 이후 의류와 파티 플래닝 사업을 경험했고 2012년 집꾸미기를 창업했다. 2014년 출시한 애플리케이션 '집꾸미기'는 셀프 인테리어에서 인테리어 B2B 시공, PB 제품 사업으로 영역을 확대 중이다. 집꾸미기는 2018년 12월 기준 총 110억 원의 투자를 유치했고 2018년 9월 기준 누적 거래액 500억 원을 돌파했다.

노대영 집꾸미기 대표


20억 원 투자 확정 소식을 공유했을 때 한숨 소리만 들렸다고 했는데 당시 상황을 자세히 말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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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C에서 투자 확정 전화를 받고 기쁜 마음으로 소식을 전했어요. 하지만 얘기한 대로 아무도 저처럼 기뻐하지 않더라고요. 당시 팀원이 20여 명 정도였는데 다들 너무나 무덤덤하고, 몇 명은 크게 한숨을 쉬고 있고. 예상 밖의 반응에 조금 당황했었어요. 제 입장에서 더 충격은 이날 저녁 회식자리였어요. 좋은 소식이 있었던 날인만큼 모두가 신나게 축배를 들며 축하하고, 축하받고 싶었어요. 2차, 3차 달리면서 진하게 술도 마시고 으쌰 으쌰도 하고. 

그런데 회식 자리에서 아무도 술을 안 마시는 거예요. 술을 권해도 거절만 하고. 어떻게 해도 분위기는 안 살고. 그러다 팀원 모두 1차가 끝나기 전에 자리를 떠났어요. 술자리에 남아 있는 사람은 저를 포함한 초기 멤버뿐이더라고요. 이때 정말 실감했어요. 내 꿈과 직원들의 꿈이 완전히 다르다는걸. 그동안 내가 주인인 왕국을 건설해왔다는걸. 이대로는 장기적 관점에서 회사가 성장할 수 없겠다고 생각했고 제가 바뀌지 않으면 안된다고 뼈저리게 느꼈어요.

집꾸미기 앱 이미지


스타트업이 투자를 받는 건 매우 큰 의미입니다. 회사의 성공을 직원들이 왜 함께 기뻐하지 않은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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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억 원 투자를 받게 됐다는 소식을 전했을 때 팀원들 반응은 말로는 표현 안 해도 ‘또 시작이구나, 또 얼마나 쪼을까?’였던 거 같아요. 그때는 정말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처럼 KPI만 보고 뛰었어요. 어떻게든 매출 KPI를 맞추기 위해 제가 모든 일에 간여하고 팀원들에게 성과를 독려했어요. 이 과정에서 지나친 마이크로 매니징을 했고 이런 행동이 팀원들을 지치게 했던 거 같아요. ‘10억 원 투자받고 그렇게 힘들었는데, 20억 원 투자를 받았으니 얼마나 더 힘들까’ 뭐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나 싶어요. 


어떻게, 어느 정도로 마이크로 매니징을 했나요. 예를 들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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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팀 일에 지나치게 간여했었어요. 당시 디자인팀 결과물이 종종 제 마음에 안 들었어요. 조금만 둘러보면 참고할 만한 우수한 서비스가 많은데 왜 우리 서비스는 그런 디자인을 못 따라갈까, 이런 불만이 있었어요. 그래서 1년 동안 유튜브에서 포토샵과 일러스트 강의를 보고 독학으로 툴을 배웠어요. 그리고 툴에 익숙해지면서 하나하나 제가 간섭을 하기 시작했죠.

디자인팀이 다른 좋은 서비스를 제대로 모니터링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아예 업무 시간에 해야 할 일을 제가 정해줬어요. 출근 후 오전 시간에는 제가 정한 사이트를 둘러보고 오후에 모니터링 내용을 토의하고 이후에 서비스에 적용하는 식이었어요. SNS 콘텐츠팀에는 어절과 음절에 대한 논문을 읽고 어절과 음절을 따른 독자 반응을 고려한 콘텐츠 포스팅을 요구했어요. 이런 식으로 모든 분야에 제가 직접 개입해 작은 거 하나하나까지 지시하고 확인했어요. 

집꾸미기 페이스북 페이지


직접 모든 사안에 개입한 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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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적인 지표로 성과가 증명된 건 별로 없었어요. 그냥 제가 원하는 대로 하니까 제 눈에는 좋아 보이고, 그래서 스스로는 좋아졌다고 느꼈던 거죠. 하지만 착각이었어요. 전문지식과 경험이 없는 제가 실무자를 두고 모든 결정을 하다 보니 상황에 따라 결정이 오락가락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당연히 팀원들도 혼란스러워했고요. 무엇보다 대표가 모든 결정을 다 하다 보니 실무자 입장에서는 일하는 재미도 없고 자존감도 떨어질 수밖에 없었죠. 자연히 퇴사자가 계속 발생했고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서 다들 지쳐갔던 거 같아요.


왜 이렇게 마이크로 매니징을 한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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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스티브 잡스 전기를 정말 인상 깊게 읽었어요. 수십 번을 봤는데 모든 CEO가 잡스 같아야 하는 줄 알았어요. 모든 걸 다 알고, 모든 일을 컨트롤하고, 모든 결정을 내리는 히어로가 돼야 한다고 착각했던 거 같아요. 다른 사업가의 글과 인터뷰 기사에서도 비슷한 내용을 많이 접했고요.

지금 돌이켜보면 사업이란 과정을 너무 짧게 본 것도 커요. 육상에 비유하면 마라톤인데 100M 달리기로 생각한 거죠. 5년이면 5년, 이렇게 기간을 잡고 그 안에 상장이든 엑시트(Exit)든 결론을 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무슨 일이든 계획대로 되기 힘들고 스타트업은 더욱 그렇잖아요. 처음부터 무리한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만 보고 달리다 보니 매번 전력질주를 해야 했어요. 그러다 보니 단기 목표에 집착하게 되고 직원을 압박하면서 목표를 맞추려고 했던 거 같아요.

사실 첫 투자를 받기 전에는 이런 식으로 경영하지는 않았어요. 첫 투자를 받고 나니 책임감이 너무 크게 다가왔어요. 저를 믿고 지지해준 투자자와의 약속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부담이 너무 컸어요.

결론적으로 경험이 많이 부족했던 거 같아요. 

(후략)

2014년 당시 집꾸미기 멤버들 모습

투자 소식을 알린 후 팀의 반응을 확인하고 어떤 결론을 내렸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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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이 뭔지, 대표는 어때야 하는지, 정말 많은 고민을 했어요. 주변에 잘되는 기업을 살펴보고 나름대로 원인을 분석했어요. 잘되는 기업은 밖으로는 매출 기반으로 성장한 거 같지만 안을 살펴보면 같이 일하는 사람의 인격을 존중하는 문화가 토대가 됐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그러다 보니 제가 사업을 한 이유가 생각나더라고요. 저는 누군가에게 간섭받지 않고 주도적으로 일하고 싶어 창업을 했거든요. 제가 간섭받고 싶지 않으면 당연히 남도 그럴 텐데, 저는 마이크로 매니징을 하고 있었던 거죠. 누군가의 일에 지나치게 간섭을 하면 그 사람의 인격을 무시하는 거고 그 사람의 인생을 부당하게 침해하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창업은 100M 달리기가 아니고 마라톤인데 기존 방식으로는 절대 멀리 갈 수 없다는 건 확실했어요. 100M 선수는 마라톤 선수보다 은퇴가 빠르잖아요. 계속 100M 선수처럼 달리면 레이스를 남기고 은퇴를 할 수밖에 없을 거란 위기감이 들었어요. ‘같이 일하는 사람의 인격을 존중해야 함께 갈 수 있고, 나와 같이 가고 싶은 사람이 많아야 회사가 성장한다, 그러려면 내가 당장 바뀌어야 한다’고 결론 내렸어요.


결론을 내리고 어떻게 변했나요. 구체적 변화를 말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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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마이크로 매니징을 그만뒀어요. 거의 모든 부분에서 저의 권한을 내려놨어요. 대표가 가진 권한을 직원과 나누고 모두가 스스로 권한을 갖고 일하는 문화를 만들었어요.

매출 기반 KPI도 없앴어요. 

(중략)

집꾸미기 스토어


한창 더 성장해야 하는 스타트업인데 매출 기반 KPI를 내려놓으면서 불안하지 않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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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략)


각 팀에서는 어떻게 KPI를 세팅하고 이를 실행하나요. 변화에 대한 팀원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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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팀의 리더가 팀의 목표와 여건에 맞게 KPI를 정해요. 

(중략)

사실 대기업과 비교하면 스타트업의 처우나 복지는 떨어질 수밖에 없잖아요. 그럼에도 좋은 분들이 스타트업에 다니는 건 권한과 유연함을 가지고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해요. 집꾸미기 팀 리더는 KPI를 스스로 잡고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고민해 이를 실행할 수 있는 권한이 있어요. 채용과 평가, 보상에 대한 권한도 모두 팀 리더에게 있죠. 팀원은 팀이 정한 방법 안에서 최대한 자유도를 가지고 이를 수행할 권한이 있고요. 

이런 변화에 회사를 싫어하던 분들이 조금씩 달라지는 게 느껴졌어요. 알아서 주말에 출근해 업무를 하는 분, 꼭 일을 하지 않아도 자신의 시간을 회사 안에서 보내는 분도 생겼고요. 제가 과도하게 가졌던 권한을 나눈 것뿐인데 구성원들은 ‘회사가 나를 인정하고 있다. 이 회사에서 내가 성장하고 있다’라고 받아들이더라고요.

집꾸미기 스튜디오 모습


권한을 내려놓고 매출 KPI를 없앤 결과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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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마이크로 매니징을 내려놓고 권한을 나눈 후 9개월 동안 매출은 이전 대비 5배 성장했어요. 매출이 급격히 성장한 건 무엇보다 팀원들의 아이디어를 반영한 덕분이에요. 직접 KPI를 세우면서...

(중략)

무엇보다 30%에 달했던 퇴사율이 2017년에는 5% 이하로 떨어졌어요.


혹 각 팀이 자율적으로 정한 KPI를 맞추지 못하면 어떻게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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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꾸미기가 진출한 셀프 인테리어 시장은 새로운 산업이에요. 기존 산업 기준으로 보면 안된다고 생각해요. 

(중략)

5배의 매출 증가도 이런 작은 실패를 함께 극복하며 만든 성과기도 하고요.


대표님의 역할은 어떻게 변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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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역할은 매번 달라요. 저를 비롯해 경영진은 이슈가 있는 팀을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이전처럼 제가 주도하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에 산발적으로 투입되는 일종의 스텝으로 일하고 있죠.(웃음)

이전에는 회사에 이슈가 생기면 저를 비롯한 경영진이 해법을 찾았는데 지금은 각 팀에서 해결책을 찾고 경영진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데 집중하고 있어요. 경영진의 KPI도 바뀌었는데 이전에는 오직 매출이었다면 지금은 ‘회사에서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게 하는 것’이에요. 모두가 웃으며 일하는 회사를 만드는 게 제 주요 업무이자 역할이 된 거죠.

노대영 집꾸미기 대표(왼쪽)와 신영섭 집꾸미기 최고운영책임자



대표님이 변한 만큼 대표님에 대한 직원들의 평가도 변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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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보다는 훨씬 저를 좋아하는 거 같아요.(웃음) 이제는 제가 요구하지 않아도 제 문제를 자기 일처럼 함께 고민하는 분이 많아요. 비단 회사 일만이 아니라 제 개인적인 고민도 잘 들어주고 같이 방법을 찾으려고 해요. 이전에는 외롭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아서 행복해요.


마이크로 매니징을 내려놓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새로운 기업문화를 만들면서 얻은 사업의 기술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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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략)


**이 콘텐츠는 책 <성공력 : 마흔 전에 성공한 사람들의 16가지 사업의 기술>에서 발췌했습니다. 인터뷰 원문은 책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성공력>은 성공한 젊은 사업가 16인의 사업의 기술을 담은 인터뷰집입니다.




태풍의 길목을 읽고 태풍의 눈으로 뛰어들다 by radiobook

"제가 처음으로 성공하는 시장에 진입한 건 오픈서베이를 시작한 바로 그 순간이었어요. 똑같은 비즈니스를 동일한 멤버들과 함께 한다고 해도 언제 시작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엄청나게 다를 수 있다는 걸 오픈서베이를 통해 실감할 수 있었죠. 주요 산업에는 큰 흐름이 있고 변화의 초입에 들어가는 게 성공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걸 알게 됐어요.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운 좋게도 오픈서베이를 시작할 때가 바로 그 변화의 초입이었고 덕분에 첫 창업에 성공할 수 있었어요. 이때의 경험으로 두 번째 창업도 빠르게 새로운 시장에 진입할 수 있었어요. - 김동호 한국신용데이터 대표"

김동호 한국신용데이터 대표는 2011년 모바일 리서치 서비스 '오픈서베이'로 첫 사업을 시작했다. 오픈서베이는 소프트뱅크벤처스 등에서 총 60억 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현재 연간 1,500여 개의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으며 국내 시장점유율은 80%에 이른다. 한국신용데이터는 김 대표의 두 번째 창업 회사로 2016년 4월에 설립됐다. 오프라인 상점을 위한 경영관리핀테크 솔루션 '캐시노트'는 2018년 12월 현재 약 15만여 개 매장에서 사용 중이다. 한국신용데이터는 카카오와 신한카드, KT 등에서 총 70억 원 투자를 유치했다.

김동호 한국신용데이터 대표

오픈서베이 창업으로 성공하는 시장에 진입했다고 했는데 창업을 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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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첫 창업은 반쯤은 우발적이었어요. 아이폰이 나오고 막 모바일 생태계가 생기던 2009~2010년에 병역 특례 중이었는데 그때는 복무가 끝나면 좋은 기업에 취업하는 게 목표였어요. 당시 저에게는 창업이라는 게 솔직히 와닿는 얘기는 아니었어요. 그러다 2010년 하반기 소셜커머스 붐이 일었어요. 

​티켓몬스터가 혜성같이 나타나 단기간에 월 거래액 100억 원을 넘어서고 어느 순간 직원도 몇백 명이 되는 거예요. 티켓몬스터 창업자 신현성 대표는 저와 나이 차이도 별로 안 나고요. ‘이게 말이 돼?’ 이런 놀람이 어느새 ‘나도 할 수 있는 거 아니야?’라는 생각으로 변했어요. 한 마디로 세계관이 바뀐 거죠. 대체 복무가 끝난 2011년, 몇 가지 아이디어를 가지고 친구 2명을 만나 모바일 창업을 제의했어요. 이 친구들이 동의하면서 사업이 시작됐죠.


​오픈서베이를 시작한 때가 거대한 변화의 초입이라고 했는데당시 상황이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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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는 스마트폰 가입자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시기였어요. ‘스마트폰 가입자 XXX만 명 돌파’ 이런 기사가 매달 나왔어요. 저희가 창업을 했을 때 스마트폰 가입자가 800만 명이었는데 한 달 후에 900만 명이 됐죠. 생각해보면 2000년대 초반에 나온 초고속인터넷 서비스가 전 국민적으로 확산되는데 거의 10년이 넘게 걸렸는데 스마트폰은 3~4년밖에 걸리지 않았어요. 이런 빠른 변화는 살면서 경험하기 힘들 거든요. 스마트폰을 기반으로 한 모바일 생태계에 밀물이 들어오고 있다는 걸 느꼈죠. 

오픈서베이 창업 초기인 2012년 당시 김동호 대표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던 시기 빠르게 시장에 진입했습니다. 사업은 순조롭게 진행됐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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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2월 법인을 설립하고 그해 여름까지 한 마디로 갈팡질팡했어요. 사실 그때까지 팀의 주력 서비스를 정하지 못했어요. 모바일 리서치와 중고거래 서비스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지 못해 팀을 나눠 두 서비스를 모두 개발했어요. 부족한 자원을 한곳에 집중해도 될까 말까인데 반으로 나누니 뭐하나 제대로 되지 않았죠. 그러던 중 지인을 통해 신현성 티켓몬스터 대표를 만나게 됐어요. 당시 신 대표는 회사를 리빙소셜에 매각한 직후였는데 선뜻 엔젤투자자가 돼 줬어요.

​아무것도 모르는 애들이 창업해서 고생하는 모습이 자기가 처음 티켓몬스터를 시작한 거랑 비슷해 응원해주고 싶었던 거 같아요. 그때 신 대표가 한 말이 “모바일 리서치와 중고거래 중에 뭐가 잘 될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둘 다 하면 안될 거 같아요”였어요. 내부적으로도 2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게 무리라고 느끼던 터라 그제야 오픈서

베이에 집중하는 걸로 결정했어요. 그 결정을 하면서도 내부에서는 중고거래 서비스를 ‘포기한다’라는 말 대신 잠시 ‘중단한다’라고 얘기했어요.(웃음)

왜 모바일 리서치 서비스였나요. 어떤 시장 가능성을 본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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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장은 반드시 온다고 믿었어요.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온라인 리서치 시장이 열렸죠. 인터넷 대중화 전에는 전화, 그전에는 대면이나 우편이 수단이었어요. 전 국민 대다수가 스마트폰을 쓰는 세상인데 모바일로 수단이 이동하는 건 너무나 당연하잖아요. 아직 모바일 리서치 시장에 진입한 기업이 전혀 없다는 것도 큰 기회였고요. 당시 고민은 시장에 기회가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이 기회를 내가 잡을 수 있을까’였어요. 리서치 업계 경험이 있는 것도 아니고 넉넉한 자본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으니까요. 그래도 결과적으로 시장에 안착한 건 빨리 시장에 들어갔기 때문이에요. 6개월만 늦었어도 시장 판도가 달라졌을 거라고 생각해요.


오픈서베이가 성장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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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서베이 앱이 나온 게 2011년 12월이에요. 처음에는 반응이 전혀 없었어요. 저희의 강점은 빠르고 저렴하다는 건데 이 점이 잘 드러나지 않았어요. 사실 의뢰사 입장에서는 몇천만 원이라는 큰돈을 주고 리서치를 하는 건데 싸다고 신뢰도 없는 신생 업체를 쓸 수는 없는 거였어요. 그러다 2012년 2월 SBS 뉴스 의뢰로 오픈서베이 리서치 결과가 공중파에 나가게 됐어요.

​방송 뉴스 특성상 이슈가 발생한 날 빠르게 설문을 완료하고 그 결과를 리포트에 반영해야 하는데 기존 업체로는 이런 빠른 진행이 불가능했어요. SBS에서 어떻게 오픈서베이 얘기를 듣고 혹시나 해서 맡겨봤는데 저희가 이 설문을 잘 수행한 거죠. 이걸 계기로 브랜드 인지도를 쌓을 수 있었고 이후 조금씩 프로젝트 의뢰가 늘면서 자리를 잡을 수 있었어요.

오픈서베이가 참여한 SBS 뉴스 설문(출처:SBS 뉴스 화면 캡처)



시장 초기에 진입한 것이 어떤 강점이 됐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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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략)

자본력 있는 기존 리서치 기업들은 시장 변화에 어떻게 대응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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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리서치 회사들은 한동안 모바일 리서치에 관심을 두지 않았어요. 이들은 대표성이 낮고 결과가 정확하지 않다는 이유로 모바일 리서치를 무시했죠. 한 마디로 전 국민을 상대로 한 조사를 수행하기에는 스마트폰 사용자가 충분하지 않다는 말이었어요.

그러다 오픈서베이가 시장에 나온 지 2년 후에야 기존 리서치 업체들도 모바일 리서치에 대응하기 시작했어요. 그 사이 전 국민이 스마트폰 사용자가 됐고, 특히 20~50대에서는 대표성에 문제가 없을 정도가 된 거죠. 결국, 시간의 문제였고 뒤늦게 들어온 기존 업체들 은 모바일 리서치 프로젝트 수행 경험에서 오픈서베이와 엄청난 격차가 있었어요. 이미 한발 늦은 거였죠.

이들이 시장에 진입했을 때 위기는 없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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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업체들이 시장에 들어온다고 했을 때 크게 긴장하지 않았던 거 같아요. 오히려 시장이 더 커질 기회라고 여겼어요. 그동안 모바일 리서치의 신뢰성을 부정하던 기업들이 들어오면서 시장을 바라보던 일부의 의구심이 해소되는 효과가 있었으니까요. 저희가 내세운 오픈서베이 강점이... 

(중략)

이런 차이 덕분에 기존 업체 진입에도 오픈서베이는 큰 위기 없이 꾸준히 성장할 수 있었어요.

2014년 10월 오픈서베이가 주최한 클라이언트데이에서 발표 중인 김동호 대표(출처:오픈서베이 홈페이지)


오픈서베이를 떠나 다시 한국신용데이터를 창업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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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월, 오픈서베이의 주주 및 비상근 이사로 남기로 하고 대표이사에서 물러났어요. 오픈서베이를 창업하고 5년간 앞만 보고 달린터라 한동안은 휴식을 취하고 싶었어요. 충분히 쉰 후에 관심 분야를 좁혀 새롭게 창업할 계획이었죠. 하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았어요. 오픈서베이 대표를 그만둔 지 석 달 만인 2016년 4월 한국신용데이터를 설립했고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어요.

한동안 휴식을 취할 계획이었는데 바로 두 번째 창업을 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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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말부터 국내에 개인 간 거래(P2P) 금융회사가 다수 등장했어요. 2014년 미국의 대표적 P2P 대출업체 ‘렌딩클럽’의 상장 성공이 국내에도 P2P 금융기업 열풍을 가져온 거죠. 마치 그루폰이 상장에 성공한 뒤 국내에 소셜커머스 바람이 분 것처럼 말이에요. P2P를 필두로 한 핀테크 기업이 등장하면서 국내 금융산업도 변화의 초입에 들어서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스마트폰 등장이 산업 구조 전반을 크게 흔들었는데, 금융은 가장 보수적인 산업이라 변화를 체감하기 어려웠어요. 금융산업에 변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는 생각이 들자 더는 지체하면 안될 거 같았어요. 스마트폰 보급 초기에 시장에 진입해 성공을 만든 오픈서베이처럼, 금융산업 변화를 체감한 2016년 봄에 바로 시작해야 늦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거죠. 이런 이유로 석 달도 채 쉬지 못하고 바로 두 번째 창업에 나섰어요.

한국신용데이터 홈페이지 메인 화면

한국신용데이터를 창업하고 내놓은 ‘캐시노트’는 오프라인 사업자 대상 핀테크 서비스입니다. 왜 한국신용데이터의 금융 혁신이 오프라인 사업자 대상이었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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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소비자 대상 금융 서비스는 어느 정도 혁신이 있었지만, 사업자 대상 영역은 큰 발전이 없었어요. 중소사업자는 스마트폰 이후 정보기술 발전의 혜택을 그다지 받지 못한 셈이죠. 한 가지 예를 들면 중소사업자가 은행에서 대출을 받으려면 서로 다른 기관 웹사이트에서 출력 후 제출해야 하는 서류가 8장이나 필요해요. 심지어 그 서류를 은행에 내면 행원이 종이에 적힌 숫자를 다시 시스템에 일일이 손으로 입력해야 하고요. 개인은 주민등록증만 가져가면 신용 등 정보 조회가 한 번에 끝나는데 말이죠.

​뿐만 아니라, 카드 결제가 보편화된 국내시장 특성상 중소사업자 대부분이 오늘 얼마를 벌었는지는 아는데, 이 돈이 언제 얼마나 정산돼 들어올지는 잘 몰라요. 8개가 넘는 카드사마다 정산 주기와 수수료가 다 다르고 정산 과정에서 전표 매입 혹은 입금이 제때 이뤄지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거든요. 사장님 입장에서는 오늘, 내일, 모레 돈이 얼마나 들어오는지 알아야 자금 계획을 세울 수 있는데 정보를 일일이 확인하려면 너무 번거로워 잘 안 하게 되는 거죠. 

이런 불편함은 사업자의 거래 정보가 충분히 전자화되어 있지 않고, 또 연결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불편함인데 한국신용데이터에서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어요. 중소사업자의 거래 정보를 전자화된 형태로 수집해, 개별 사업자에게 분석된 정보를 제공한다면 수요가 적지 않을 거라 생각했어요.


캐시노트는 중소사업자에게 어떤 정보를 주는지 간단히 설명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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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시노트는 카카오톡 기반 경영관리 서비스예요. 카카오톡에서 플러스친구를 맺으면 서비스를 바로 이용할 수 있어요. 중소사업자에게 매일 아침 카카오톡으로 등록된 사업장의 매출 분석 리포트를 제공해요. 전일 총매출과 재방문 고객 비중, 개별 카드사가 오늘 입금할 금액, 내일과 모레 정산 받을 카드대금, 새로 발행된 세금계산서 내역 등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보여주죠. 여기에 온라인상에 기록된 모든 매장 리뷰를 모아 제공해요. 매출 관리와 단골 분석, 입소문 리뷰 관리까지 가능한 거죠. 2019년 초에는 분석을 넘어, 가게 매출을 직접 신장시킬 수 있는 마케팅 기능까지 더해질 예정이예요. 

​캐시노트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별도 앱 설치 없이 카카오톡으로 편하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는 거예요. 중소사업자 상당수가 중장년층이고 이분들은 상대적으로 모바일 서비스가 익숙하지 않거든요. 이런 분들도 카카오톡은 이미 잘 사용하고 있어서 캐시노트도 큰 어려움이 없이 이용하세요. 덕분에 캐시노트 가입자 절반 이상이 40대 이상으로 모든 연령대에서 골고루 쓰이고 있어요. 

(후략)

카카오톡 대화창에서 서비스 되는 캐시노트(출처:캐시노트 홈페이지)



캐시노트가 영업조직도 없이 이런 빠른 성과를 내는 결정적 이유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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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위챗 총 사용시간의 20% 정도가 이 미니 프로그램에서 나올 정도예요. 카카오톡 지능형 API가 이 위챗 미니 프로그램과 같은 건데 카카오가 API를 오픈했을 때 거대한 변화가 시작됐다고 느꼈어요. 마치 오픈서베이를 처음 시작했을 때처럼요.

빠르게 카카오톡 지능형 API 활용한 서비스를 시작해서 얻은 구체적 이익은 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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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략)

새로운 시장에 빨리 진입하려면 기회를 앞서 포착해야 하는데 이런 능력은 어떻게 키울 수 있나요. 대표님만의 사업의 기술이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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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략)

김동호 대표(왼쪽 첫 번째)와 한국신용데이터 팀원들


​**이 콘텐츠는 책 <성공력 : 마흔 전에 성공한 사람들의 16가지 사업의 기술>에서 발췌했습니다. 인터뷰 원문은 책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성공력>은 성공한 젊은 사업가 16인의 사업의 기술을 담은 인터뷰집입니다.


성장하는 시장에 진입하는 두 가지 기준 by radiobook

“처음 창업을 결심하고 법인을 설립했을 때부터 액티비티 예약 플랫폼을 하려던 건 아니었어요. 여행을 주제로 서비스하겠다는 생각으로 여러 아이템을 검토했어요. 최종적으로 아이템 두 개를 고민했는데 하나는 여행 계획을 짜는 걸 도와주는 트립 플래닝(Trip Planning) 서비스와 액티비티 예약 서비스였죠. 결국 액티비티 예약 서비스를 선택했는데 이 결정이 지금의 와그트래블을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성장성 있는 큰 시장에 진입한, 너무 다행스러운 선택이었죠. 그때 트립플래닝을 선택했다면 아마 서비스를 진작 접었을 거예요. 이 경험으로 성장하는 시장에 진입하기 위한 나름의 기준이 생겼어요. -선우윤 와그트래블 대표-”

선우윤 와그트래블 대표는 다나와 정보콘텐츠 사업부, 브라이니클 홍보팀을 거쳐 2015년 1월 와그트래블로 첫 창업에 나섰다. 평소 여행 마니아로 액티비티 예약 플랫폼 가능성에 주목했고 와그로 국내에 투어&액티비티 시장을 열었다. 와그는 2018년 12월 기준 다운로드 120만 건, 제휴사 1,800여 곳을 확보하며 국내 1위 액티비티 예약 플랫폼으로 성장했다. 2018년 매출은 200억 원을 넘어섰다. 와그트래블은 2018년 말까지 국내외 벤처캐피털과 글로벌 기업에서 총 135억 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선우윤 와그트래빌 대표

트립 플래닝과 액티비티 예약을 끝까지 고민했습니다. 각 아이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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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키지가 아닌 자유여행이 대세가 되면서 여행을 가기 전에 구체적 계획을 세우는 사람이 많아졌어요.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찾다가 여행 계획을 세우는 데 보통 17시간이 걸린다는 한 통계를 봤어요. 제가 언뜻 생각해봐도, 항공편을 알아보고 숙소를 예약하고 현지 맛집과 명소, 교통편 등을 제대로 알아보려면 보통 이 정도 시간은 걸리겠더라고요. 

​여행 계획을 짜는 사람은 점점 많아지는데 스마트하게 여행 계획을 짜고 이를 공유하는 서비스는 없었어요. 쉽고 편하게 여행 계획을 세울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도 충분히 의미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액티비티 예약은 제 경험에서 나온 아이디어였어요. 마카오로 여행을 갔는데 현지에 유명한 번지점프 스폿이 있었어요. 이곳에서 번지점프를 꼭 하고 싶어 예약하려고 하는데 예약하는 곳을 찾기가 너무 힘든 거예요. 어렵게 현지 업체 사이트를 찾아 예약하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전 세계 어디를 가나 호텔은 예약 플랫폼에서 편하게 예약할 수 있는데, 왜 액티비티는 이런 서비스가 없는 거지?’

​그리고 액티비티 시장을 조사했는데 글로벌 시장에도 뚜렷한 예약 플랫폼이 없더라고요. 몇몇 업체가 이제 막 서비스를 시작하는 수준이었죠. 개인적으로 액티비티 시장이 열릴 거라는 확신이 있었어요. 가능성 있는 시장에 빠르게 들어가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법인을 설립하고 액티비티 예약으로 아이템을 확정하기까지 6개월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때 한 일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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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 후 처음 6개월은 아이템을 고민하며 내부 마케팅 채널을 키우는 시간이었어요. 창업 전 브라이니클이란 스타트업에서 여러 마케팅 활동을 했었는데 모든 활동에 돈이 들었어요. 예산에 한계가 있으니 마케팅 활동에도 늘 한계가 있었죠. 창업을 하면서 강력한 내부 마케팅 채널을 확보하는 걸 초기 목표로 잡았어요. 돈 안 들이고 지속적으로 마케팅을 하기 위해서였죠. 

​구체적인 아이템은 확정이 안됐지만 여행이란 카테고리는 정해졌으니 여행 정보를 제공하는 SNS 채널을 열어 구독자를 모았어요. 초기 멤버 1명과 제가 하루에 여행 콘텐츠를 12개씩 만들면서 페이스북과 카카오스토리 채널을 운영했어요. 불안한 미래에 떠는 아저씨 2명이 하루에 담배 2갑씩 피우며 아이템 고민을 하고 여행 콘텐츠를 만들던 시절이었어요.(웃음)

와그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

결과적으로 액티비티 예약 서비스로 아이템을 결정했습니다. 이런 결정의 배경은 무엇이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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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에서 여러 콘텐츠로 테스트를 했어요. 단순 여행지 소개보다 여행지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액티비티를 소개하는 콘텐츠가 독자들의 더 큰 반응을 얻었죠. 2015년 6월쯤에 SNS에서 춘천 레일바이크를 소개하고 콘텐츠에 예약 링크를 달았는데 순식간에 100여 장이 팔린 거예요. 순간 ‘이거 될 거 같다’라는 느낌이 왔어요. 트립 플래닝은 사실 수익모델을 붙이기 힘들다는 고민이 컸어요. 액티비티 플랫폼은 예약을 붙이면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실제 예약이 일어날까 궁금했는데 이 테스트를 통해 충분히 수익모델이 작동하겠다는 확신이 생겼어요.

​무엇보다 액티비티 예약 서비스가 성장성이 있겠다는 판단이 최종 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어요. 트립 플래닝 서비스는 비즈니스모델(BM)을 붙이기 힘들고 시장도 작아 성장성에 한계가 있었어요. 당연히 벤처캐피털(VC) 투자 유치도 기대하기 힘들 수밖에 없고요. 반면 액티비티 예약 서비스는 바로 BM 적용이 가능하고 시장도 컸어요. 

여행 가는 사람 모두 여행지에서 할 일이 필요하고 이 할 일을 모두 모으면 호텔 예약보이 아직 열리지 않았고 저희가 초기에 그 가능성을 발견했다는 것만으로도 큰 경쟁력이라고 생각했죠. 

​트립 플래닝과 액티비티 예약을 구분했지만 사실 이 두 가지가 완전히 분리되는 것도 아니었어요. 

(후략)

아이템을 결정했지만, 당시는 ‘액티비티’란 말도 생소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주위에 평가나 반응은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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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가 바라본 액티비티 시장에 대한 주위의 평가는 ‘반반’이었어요. 액티비티 예약 플랫폼으로 국내 유력 통신사의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에 지원했는데 보기 좋게 떨어졌어요. 당시 통신사 쪽에서는 액티비티 시장이 없다고 말했어요. 용어도 생소한 시장을 스타트업이 만드는 게 불가능하다, 뭐 이런 이유였죠. 

​이때 완전 오기가 생겼어요. ‘우리가 꼭 증명해내겠다’라는.(웃음) 이후에 정부기관에서 하는 스타트업 지원 사업 ‘스마트벤처창업학교’에 참여해 1등으로 선정되며 가능성을 인정받았어요. 이걸 계기로 다날과 옴니텔에서 3억 원의 초기 투자를 받았고 2015년 8월 정식으로 서비스 개발에 들어갔어요. 

2016년 당시 와그 팀원들 모습

정식 서비스 론칭 전에 초기 투자를 유치할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이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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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가 첫 투자를 받을 즈음에 글로벌 시장에서 성과를 내는 스타트업이 등장하기 시작했어요. 미국의 액티비티 예약 서비스 ‘픽닷컴(Peek.com)’과 독일의 ‘겟유어가이드(GetYourGuide)’가 규모 있는 두 번째 투자 유치에 성공했어요. 액티비티 예약이란 새로운 시장이 열리고 있다는 좋은 증거였죠.

​대규모 SNS 채널 구독자를 모은 것도 좋은 평가를 받았어요. 6개월만에 약 45만 명의 구독자를 모았어요. 액티비티 시장은 이제 막 열리고 있고 우리는 사람을 모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점을 강조해 투자자를 설득할 수 있었어요.

대규모 투자 유치에 성공한 미국의 액티비티 플랫폼 '픽닷컴'

초기 서비스 론칭 후 어떻게 시장에서 자리 잡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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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월 와그 앱과 웹을 동시에 오픈했어요. 빠르게 시장에 진입했지만, 첫 번째 서비스는 아니었어요. 기존 여행 서비스 중에 액티비티 예약을 추가한 곳이 있었고 와그와 비슷한 버티컬 서비스도 저희보다 조금 앞서 시장에 진출했어요. 하지만 앱으로 액티비티 예약 서비스를 선보인 건 저희가 처음이었어요. 

​(중략)

모바일에서 사용자 경험을 높이는 데 집중한 덕분에 모바일에선 빠르게 확실한 1등으로 자리 잡았어요. 2016년 10월, VC 2곳에서 추가 투자를 받았어요. 이 투자를 받기 위해서 VC가 제시한 마일스톤을 달성해야 했어요. 3월부터 10월까지 평균 월 거래액 2억 원을 만드는 것이었죠.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했어요. 앱에서 보통 월 거래액이 1억 7,000만 원가량이 나왔어요. 부족한 3,000만 원을 채우기 위해 유명 여행지에 나가 티켓을 직접 팔기도 하고 대학을 돌며 엠티를 주관하는 과대표를 만나 상품을 팔기도 했어요. 이렇게 어떻게든 거래액 2억 원을 맞췄고 추가 투자 5억 원을 받을 수 있었어요.


와그가 국내 액티비티 플랫폼 1위로 올라설 수 있었던 계기는 무엇인가요. 퀀텀 점프를 한 순간이 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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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을 고민하고 해답을 찾으면서 엄청난 성장을 할 수 있었어요. 이전까지 상당수 액티비티 상품은 고객이 예약해도 티켓을 바로 받을 수 없었어요. 저희가 처음 해답을 찾은 상품은 일명 ‘일본 패스권’이었어요. 

​(중략)

이런 방식으로 대박이 난 제품이 바로 유심칩이에요. 보통 유심칩은 현지에 도착해서 사는데 여행객에 따라 언어도 부담되고 너무 늦거나, 이른 시간 도착하면 상점을 찾기도 쉽지 않죠. 

​(중략)

와그에서 판매 중인 일본 유심카드

​그래서 한동안 신규 사용자가 가장 많이 유입된 곳이 공항이었어요. 이 공항 부스 덕에 월 거래액 2억 원에서 단번에 10억 원으로 퀀텀점프를 할 수 있었어요.


실시간에 집중해 성공한 다른 예는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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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티비티 예약 상품의 실시간 발권 기능을 가장 먼저 시도했고 이 역시 큰 성공을 거뒀어요. 이전까지 액티비티 상품은 실시간 발권이 거의 없었어요. 상품별로 고객에게 받아야 할 정보가 다 다르고 이를 확인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보라카이에서 스노클링 체험을 예약한다고 하면 고객별로 스노클링복과 신발 사이즈가 다 다르잖아요. 그래서 기존 예약 서비스는 일단 사이트에서 예약을 받고 고객에게 따로 전화를 걸어 예약 정보를 다시 확인했어요. 이렇게 확인한 고객 정보를 현지 업체에 보내 예약할 수 있는지 확인하고, 가능하다는 회신을 받으면 예약 확

정을 다시 고객에게 알리고, 고객은 이 알림을 받고 나서야 발권할 수 있었어요. 이렇게 여러 단계를 거치면 보통 3일 이상이 걸려요. 

저희는 실시간 발권을 구현했어요. 고객 입장에서는 여러 상품을 예약할 수 있는데 상품마다 같은 정보를 여러 번 입력하면 불편하잖아요. 

(중략)

​실시간 발권 덕분에 월 거래액이 20억 원까지 성장할 수 있었어요.

실시간 발권 시스템을 구축한 와그


​‘실시간’이라는 가치를 구현하는 데 있어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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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도 힘들고 특히 상품정보 수집이 어려워요. 다른 예약 플랫폼 상당수는 상품 정보를 제휴사가 올리게 해요. 여러 제휴사가 동일한 기준 없이 상품정보를 올리다 보니 꼭 필요한 고객 정보를 받지 못하고, 그 결과 별도 전화로 정보를 확인하는 절차가 생길 수밖에 없어요. 저희는 모든 제휴사 상품을 직접 등록해요. 그래서 필요한 고객 정보를 한 번에 얻을 수 있죠. 이렇게 하다 보니 상품을 빠르게 늘리는데 제약이 있지만 그만큼 높은 고객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액티비티 시장은 그동안 얼마나 성장했나요. 처음 시장에 진입했을 때 예상과 비교하면 어느 정도 수준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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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시장에서는 대규모 투자와 인수합병 사례가 다수 나오고 있어요. 홍콩을 기반으로 한 액티비티 예약 플랫폼 ‘클룩’이 최근 2,000억 원이란 대규모 투자 유치에 성공했어요. 독일의 ‘겟유어가이드’ 역시 1,000억 원을 투자 받았고요. 이탈리아 서비스 ‘뮤즈먼트’는 6개 항공사를 가진 TUI그룹에 인수됐고, 미국의 ‘바이아터’도 트립어드바이저에 인수됐어요. 

​국내 액티비티 예약 시장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어요. 처음 와그를 시작할 때 국내 시장 규모를 2조 원으로 봤는데 현재는 3조 원 규모로 평가되고 있어요. 더 고무적인 건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이에요. 액티비티 예약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용자가 크게 늘었지만, 전체 여행객 중 사용자는 여전히 10% 미만이에요. 앞으로 더 많은 사용자가 유입될 전망인 만큼 액티비티 예약 시장 규모는 더 커질 거라고 봐요. 

와그 홈페이지


성장하는 시장에 진입하는 게 왜 중요하고, 이런 시장은 어떤 기준을 가지고 선별해야 하나요. 대표님만의 사업의 기술을 말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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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략)

​**이 콘텐츠는 책 <성공력 : 마흔 전에 성공한 사람들의 16가지 사업의 기술>에서 발췌했습니다. 인터뷰 원문은 책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성공력>은 성공한 젊은 사업가 16인의 사업의 기술을 담은 인터뷰집입니다.


사용자를 인플루언서로...대역전을 만든 방법 by radiobook

"2009년 11월 iOS 기반 애플리케이션 정보를 제공하는 ‘팟게이트’를 선보였어요. 이후 아이폰이 국내 시장에서 인기를 끌면서 회사도 빠르게 성장했죠. 팟게이트는 iOS 앱을 추천하는 서비스로 영향력이 컸고 자연히 앱 마케팅 플랫폼으로 발전하며 큰 매출을 올렸어요. 그러다 갑자기 안드로이드가 대세가 되고 리워드 기반 앱 마케팅이 주류가 되면서 생존을 위협받을 정도로 회사가 어려워졌어요. -박무순 오드엠 대표-"

"생존을 위해 새로운 활로를 찾아야 했고 저희의 선택은 팟게이트 사용자의 영향력을 활용하는 것이었어요. 팟게이트는 사용자가 스스로 앱을 소개하고 추천하는 커뮤니티 기능이 강했어요. ‘사용자가 알아서 앱을 추천하게 하고 성과에 따라 경제적 보상을 주면 어떨까’라는 아이디어가 애드픽의 출발이 됐어요. -안소연 오드엠 부사장-"

박무순 대표는 야후코리아 개발자로 일하던 2009년 11월, 혼자 힘으로 iOS 앱 추천 서비스 '팟게이트'를 론칭했다. 팟게이트가 인기를 끌면서 2010년 3월 회사를 떠나 본격적인 사업가의 길에 들어섰다. 야후코리아에서 기획자로 일하며 박 대표와 인연을 맺은 안소연 부사장은 현재 오드엠의 서비스 기획과 운영을 총괄하고 있다. 오드엠은 2013년 인플루언서 마케팅 플랫폼 '애드픽'을 론칭하며 2016년 99억 원, 2017년 102억 원의 매출을 올리며 제2의 도약을 이뤘다.

박무순 오드엠 대표(오른쪽)와 안소연 부사장

팟게이트로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팟게이트는 어떤 서비스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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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무순 대표

팟게이트는 iOS 기반의 쓸만한 앱을 소개하는 서비스에요. 지금이야 앱에 대한 정보가 많지만, 당시는 좋은 앱에 대한 정보를 찾기 쉽지 않았어요. 애플 앱스토어의 추천 기능도 약했고요. 팟게이트는 iOS 앱 정보를 제공하는 포털이자 사용자가 앱을 평가하고 의견을 나누는 커뮤니티로 자리매김했어요.

인기를 끈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는 일명 ‘오늘만 무료’로 유료 앱의 한시적 무료 다운로드 정보를 제공한 것이었어요. 아이폰은 좋은 유료 앱이 많고 이 앱을 특정 기간 무료로 다운로드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요. 이 정보를 모아 제공하면서 아이폰 사용자들 사이에서 ‘아이폰 필수 앱’이라는 평가를 받았죠.

초기 팟게이트 서비스 화면


​팟게이트 성과는 어느 정도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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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무순 대표

2009년 11월 팟게이트 웹서비스를 처음 출시했어요. 당시에는 회사에 다니면서 서비스를 운영했는데 너무 잘 돼서 자연스럽게 회사를 나와 창업을 하게 됐어요. 팟게이트는 PC버전, 아이패드 버전, 유료 버전 등으로 여러 서비스를 출시했고 시리즈의 총 다운로드는 iOS 기준 1,000만 건이 넘었죠. 서비스를 내고 3년간 회사가 거둔 매출이 50억 원 정도였어요. 직원 4명이 연 매출 20억 원을 하기도 했어요.

당시 국내 앱 마케팅 플랫폼은 팟게이트가 유일했고 그래서 광고주가 몰려왔어요. 팟게이트에 광고를 내기 위해 광고주가 한 달 이상 대기하는 상황도 벌어졌죠. 2012년까지는 ‘팟게이트에서 밀면 무조건 앱스토어 상위 랭킹에 든다’라는 정설이 통하던 시기였어요. 

팟게이트 출시 초기 오드엠 멤버들


잘 나가던 팟게이트에 어떤 위기가, 왜 찾아온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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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무순 대표

2013년 들어 안드로이드 시장이 급성장했어요. 이전까지는 아이폰에 맞설 제대로 된 단말기가 없었는데 몇몇 히트작이 나오면서 상황이 급변했어요. 순식간에 안드로이드의 국내 시장점유율이 90%까지 치솟았고 반대로 팟게이트 사용자는 하루가 다르게 급감했어요.

너무나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에 ‘멘붕’이 찾아왔어요. 저희뿐만 아니라 iOS를 주력으로 하던 서비스 모두 마찬가지였어요. 사실 당시 안드로이드는 iOS에 비해 너무 퀄리티가 떨어졌어요. 단말기도 그렇고 좋은 앱도 거의 없었고요. 워낙 퀄리티 차이가 커 안드로이드가 iOS를 역전하는 상황이 올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시장 변화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었어요.


안소연 부사장

다른 이유는 리워드 기반 앱 마케팅 플랫폼의 등장이었어요. 소위 말하는 ‘보상형 CPI(Cost Per Install)’인데, 사용자에게 앱 설치 대가로 보상을 주는 서비스들이 인기를 끌었죠. 사용자는 앱 하나를 다운로드하는 대가로 100원~200원을 받을 수 있었어요. 이 서비스들을 통해 엄청난 앱 다운로드가 일어나자 광고주가 모두 보상형 CPI 시장으로 이동했어요. 광고주가 떠난 시장에서 매출이 급감했고 직원 일부를 정리하는 상황까지 이르게 됐어요.

당시 보상형 CPI 서비스의 인기를 짐작할 수 있는 기사들(출처:네이버 뉴스검색)


오드엠은 어떻게 위기에 대응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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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소연 부사장

급하게 팟게이트 안드로이드 버전을 출시했어요. 하지만 iOS 같은 성과는 얻지 못했어요. 팟게이트는 오늘만 무료인 유료 앱을 추천하는 게 핵심인데 당시 안드로이드는 제대로 된 유료 앱이 전무하다시피했어요. 유료 앱을 한시적으로 무료로 전환하는 것도 정책상 불가능해 ‘오늘만 무료’라는 콘셉트가 성립조차 안됐어요.

​또, 아이폰과 달리 안드로이드 기반 단말기에는 번들로 깔린 기본 앱이 많았어요. iOS 사용자가 다양한 앱을 찾아 직접 써보는 마니아적 성향이 강했다면 안드로이드 사용자는 앱에 대한 관심 자체가 크지 않아 번들 앱 사용에 만족하는 성향도 있었죠. 이런 상황에서 저희 역시 경험이 없어 iOS 앱을 안드로이드 버전으로 그대로 냈을 뿐 사용자에게 충분히 어필할 매력 있는 앱을 만들지 못했고요.

박무순 대표

보상형 CPI가 앱 마케팅 시장을 휩쓸고 있었지만 오드엠이 이런 추세를 따라갈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사용자에게 단지 앱 설치만을 대가로 돈을 주는 건 저희가 생각하는 마케팅 본질과는 거리가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좋은 앱을 발견하고 추천하며 자연스럽게 사용자가 되는 진성 마케팅 플랫폼이란 팟게이트의 본질을 지키고 싶어 많은 고민을 했고 이 고민이 결국 애드픽으로 이어졌어요.

오드엠이 출시한 안드로이드 버전 '팟게이트'

애드픽은 어떻게 탄생했나요. 애드픽 개발 당시의 상황이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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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소연 부사장

2013년 들어 회사가 갑자기 어려워지면서 몇 달간 적자가 이어졌어요. 팟게이트가 워낙 서비스 개시와 동시에 큰 매출을 올렸던 터라 이런 상황이 당황스러웠죠. 직원을 줄이고 그동안 벌은 돈으로 회사를 운영하며 절박한 마음으로 활로를 찾았어요. 처음에는 어떻게든 팟게이트를 살리기 위해 노력했어요. 안드로이드에서 다양한 시도를 했지만 잘 안됐고 어쩔 수 없이 팟게이트가 아닌 다른 곳에서 방법을 찾아야 했어요.

​팟게이트 밖에서 해법을 찾아야 했지만, 팟게이트 사용자는 꼭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이들은 순수하게 앱을 쓰고 분석하고 추천하는 걸 즐겼어요. 그러다 보니 팟게이트 사용자가 추천하는 앱은 자연스럽게 다운로드가 잘 나왔어요. 새로운 서비스는 이런 진성 사용자에 기반을 둔 마케팅 플랫폼을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했어요.

박무순 대표

기술적으로 애드픽을 구현할 수 있는 힌트를 얻은 게 결정적이었어요. 외국계 광고 대행사와 일을 하면서 매체별로 고유 링크를 발급하고 이 링크를 추적해 성과를 지표화하는 기술을 발견했어요. A라는 매체에서 마케팅 캠페인을 시작하면 A 매체 전용 링크를 발급하고 이 링크를 추적해 클릭률과 전환율 등 원하는 성과를 집계하는 거죠. 제가 충분히 개발할 수 있는 기술이었고 링크를 개별 사용자 별로 발급하고 집계하면 성과에 따른 공정한 보상이 가능할 거라는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후략)


초기 애드픽에 대한 반응은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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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소연 부사장

애드픽이 안되면 사업을 접기로 했을 만큼 절박한 상황이었는데 기존 광고주나 업계 관계자 반응이 너무 안 좋은 거예요. 애드픽을 소개하면 정말 10명 중 8~9명은 ‘안된다’라고 했어요. ‘일반인이 제대로 된 마케팅 콘텐츠를 만들 수가 없다’, ‘사용자를 속이는 어뷰징 콘텐츠가 판을 칠 거다’, ‘그런 식의 마케팅 상품은 시장성이 없다’라는 의견이 대부분이었어요. 인플루언서라는 말도 없던 때라 이들을 활용한 마케팅 플랫폼이란 걸 이해시키기도 쉽지 않았어요.

박무순 대표

시장 반응은 부정적이었지만 내부 테스트 결과는 좋았어요. 팟게이트 사용자 100명을 대상으로 애드픽을 소개하고 성과에 따라 팟게이트 포인트를 주는 실험을 했는데 결과가 나쁘지 않았어요. 생각보다 어뷰징 콘텐츠가 없었고 보상을 받으니 열심히 활동하는 사용자도 많았어요. 실제 서비스로 나오면 열심히 할 테니 꼭 출시해 달라는 사용자도 있었고요. 테스트 결과를 보고 ‘이거 되겠다’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론칭 초기 애드픽 서비스 이미지


애드픽은 앱을 소개해 줄 사용자, 일명 ‘인플루언서’를 많이 모으는 게 중요한데 초기에 어떻게 이들을 모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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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무순 대표

2013년 12월 애드픽 베타 서비스를 론칭했어요. 초기 활동자가 필요했는데 팟게이트 사용자가 마중물이 돼 줬어요. 첫 캠페인으로 애드픽을 소개하고 다운로드가 일어나면 천 원의 보상을 지급했어요. 원래도 아무 대가 없이 앱을 소개하는 걸 즐겼던 분들이었는데 보상이 따라오니 더 열심히 활동을 해줬고 덕분에 애드픽이 입소문이 나면서 자연적으로 인플루언서가 늘었어요.

(후략)


부정적 평가를 했던 광고주 반응은 어떻게 변했나요. 시장에서 애드픽이 인정받은 계기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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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소연 부사장

처음에는 광고주 설득이 어려웠어요. 애드픽 같은 광고 플랫폼이 처음이라 이에 대한 이해가 없었죠. 서비스 초기, 애드픽의 광고 효율이 너무 좋은 게 문제가 되기도 했어요. 이전 광고는 대부분 배너나 푸시 알림 등으로 이뤄졌고 광고 노출 횟수와 클릭률로 성과 측정을 했어요. 배너 같은 경우 노출 대비 클릭률이 1% 미만인 경우가 대부분인데 애드픽은 30~50%가 나왔어요.

​인플루언서가 만든 매력적인 콘텐츠 덕분에 클릭률이 높은 건데 기존 배너 광고와 차이가 너무 크게 나다 보니 광고주 대부분이 이런 높은 효율을 이해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어뷰징을 한다는 오해를 사기도 했어요. 한 해외 네트워크 광고사는 애드픽 클릭률이 너무 높아 자체적으로 어뷰징으로 판단, 광고를 끊기도 했어요. 시간이 가면서 애드픽 캠페인 성공사례가 쌓이고 시장의 이해도가 높아지면서 자연스럽게 해결됐지만, 한동안 이런 오해가 계속됐어요.

오드엠 사무실 모습

서비스 초기 애드픽이 시장에 자리 잡을 수 있었던 대표적 성공사례를 소개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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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무순 대표

‘레알팜’이라는 게임의 앱 다운로드 캠페인이 화제가 됐었어요. 현재까지 애드픽을 통해 이뤄진 누적 다운로드가 약 32만 건인데 이 게임은 사용자가 게임에서 키운 작물을 실제 집으로 보내주는 이벤트를 했어요. ‘레알팜에서 채소를 키우면 집으로 채소가 와요’라는 바이럴 포인트가 잡히면서 애드픽 인플루언서들이 높은 성과를 냈어요.

​애드픽을 통해 다운로드도 많이 일어났지만 유입된 사용자의 질이 너무 좋아서 더 주목받았죠. 애드픽 인플루언서의 콘텐츠를 보고 앱을 다운로드한 사용자의 앱 사용률이 다른 마케팅 매체로 유입된 사용자의 앱 사용률 대비 훨씬 높았어요. 당연히 광고주 입장에선 애드픽을 선호할 수밖에 없었죠. 이 캠페인 덕분에 애드픽이 광고주 사이에서 인정받는 플랫폼이 됐어요.


안소연 부사장

​(후략)

초기 애드픽 대표 성공사례가 된 '레알팜' 캠페인

애드픽을 운영하면서 큰 위기는 없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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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무순 대표

어뷰징 이슈가 있었어요. 보상이 크다 보니 수익만을 목적으로 하는 인플루언서들이 어뷰징을 하면서 앱 설치 후 실사용자 전환율, 결제율 등 전체 광고 효율이 떨어지기 시작했어요. 예를 들어, 앱을 1건 다운로드 시킬 때마다 애드픽에서 받는 보상이 천 원이에요. 이를 이용해 친구들에게 500원을 주고 앱을 다운로드시키는 사용자도 있었죠. 어느 순간 이런 식의 사용자가 늘면서 어뷰징 관리 이슈가 커졌어요.

안소연 부사장

카피캣도 하나, 둘 생기기 시작했어요. 경쟁자가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는데 문제는 저희에게 광고 물량을 대주던 회사까지 직접 카피캣 서비스를 내면서 광고가 끊기기도 했어요. 또 유력 인플루언서를 확보하기 위한 서비스 간 경쟁도 심해졌죠. 애드픽이 선두였던 만큼 후발주자들의 집중 견제를 받았어요. 광고주에게는 ‘무조건 애드픽보다 싸게’, 인플루언서에게는 ‘애드픽보다 많이’가 그들의 구호였어요. 자연히 저희도 광고 단가를 낮추고 인플루언서 보상은 높일 수밖에 없었죠.

어뷰징 문제는 어떤 해법을 찾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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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무순 대표

기술적으로 모니터링을 강화했어요. 자체적으로 모니터링 프로그램을 개발해 인플루언서 활동을 추적하고 있어요. 특정 IP와 기기에서 반복적으로 성과가 나오는 등 정상을 벗어난 패턴이 파악되면 경고 알람이 가고 활동이 자동 차단돼요. 성과 출처가 불분명한 회원은 출처를 명확히 해명해야 보상을 받을 수 있어요. 반복된 어뷰징이 확인된 회원은 활동 자격을 박탈하고요. 반대로 올바른 방식으로 높은 효율을 내는 상위 인플루언서에게는 높은 등급과 보상을 제공해요. 이들을 롤모델로 다른 인플루언서들이 더 열심히 활동할 수 있는 유인책을 제공하는 셈이죠.

안소연 부사장

인플루언서가 어뷰징 유혹에 빠지지 않게...

​(생략) 

카피캣 서비스와의 경쟁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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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소연 부사장

앱 다운로드에서 벗어나 다양한 영역에서 성과형 인플루언서 마케팅을 진행하고 있어요. 영상 재생형, 클릭형, 예약형, 판매형 등 다양한 성과 기반 상품을 출시해 인플루언서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죠. 영상 재생형 광고는 개봉 영화의 예고 영상을 인플루언서 채널에서 노출하고 재생당 수익을 줘요. 현재 영화 광고주가 가장 선호하는 마케팅 방식이 됐죠. 지금은 앱 광고주보다 앱 이외의 광고주 비중이 더 높아요. 후발주자들이 아직 앱 마케팅에만 머물러 있는 반면 애드픽은 새로운 영역에서의 가능성을 꾸준히 실험, 증명하고 있어요.

다양한 영역으로 광고 상품을 확장한 애드픽


오드엠 창업으로 얻은 사업의 기술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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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무순 대표

​(생략)


안소연 부사장

​(생략)

**이 콘텐츠는 책 <성공력 : 마흔 전에 성공한 사람들의 16가지 사업의 기술>에서 발췌했습니다. 인터뷰 원문은 책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성공력>은 성공한 젊은 사업가 16인의 사업의 기술을 담은 인터뷰집입니다.


성공은 ‘전략’이 아닌 ‘철학’이 만든다 by radiobook

"데일리앤코의 모토가 ‘일상을 개선하자’예요. 소비자가 필요로 하는 걸 먼저 발견하고 상품화하는 것, 기존에 있었지만, 가치를 잘 몰랐던 상품을 재해석해 유용함을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어요. 이 전략이 소비자에게 어필하며 빠른 성장을 이룰 수 있었죠. 좋은 방향으로 시장에 진입했는데 중간에 잠깐 전략이 흔들리면서 시행착오를 겪었어요. 이 실패를 계기로 ‘재해석’이라는 것이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는 ‘전략’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회사의 ‘철학’이 됐어요. - 문다혜 데일리앤코 대표"


미디어 커머스 스타트업 '데일리앤코'의 문다혜·최윤호 대표는 부부 사업가다. 데일리앤코는 2015년 11월에 창업해 여성 뷰티 브랜드 '유리카'로 눈썹 타투펜, 페이스 실드, 헤어 실드 등 메가 히트 제품을 쏟아내며 빠르게 성장했다. 국내 시장에 본격적인 미디어 커머스 시대를 연 주역으로 2017년 8월 상장사 에코마케팅에 200억 원대 기업 가치로 투자·인수됐다. 데일리앤코 창업 전 문 대표는 음악교육, 멀티채널 네트워크(MCN) 분야에서 사업을 진행했다. 최 대표는 앱 기반 F&B 마케팅 서비스, MCN 사업 등에서 경험을 쌓았다. 데일리앤코는 현재 뷰티를 넘어 리빙, 식품, 가전으로 사업영역을 넓히고 있다.

데일리앤코의 부부 창업가 문다혜(오른쪽), 최윤호 대표


두 분 다 관련 경험이 없었는데 뷰티 창업을 한 계기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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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다혜 대표

데일리앤코가 창업한 2015년은 페이스북 기반으로 커머스를 시도하는 기업이 하나, 둘 등장하던 시기였어요. 몇몇 스타트업이 뷰티 제품으로 성공사례를 만들고 있었는데 그 당시 저는 최 대표와 함께 MCN 사업을 하며 콘텐츠 제작과 유통, 광고 운영 및 성과 측정 노하우를 쌓고 있었죠.

MCN 사업은 곧 인플루언서 사업인데 인플루언서 마케팅이 가장 활발한 곳이 바로 뷰티 분야여서 자연히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죠. 뷰티 시장 마케팅 성공 사례를 분석해 봤는데 충분히 저희가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케팅에 강점을 갖고 활동하는 회사가 적어 빠르게 시장에 진입하면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어요.

화장품 제조 과정이 쉽지 않았을 텐데 마케팅만 하지 않고 제조까지 직접 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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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호 대표

이전 사업을 하면서 핵심 역량은 100% 내부에 있어야 한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어요. 외부 의존도가 높으면 제어할 수 없는 변수가 생기고 결과적으로 사업이 성장하지 못하더라고요. MCN 사업을 예를 들면 소속 인플루언서 관리가 너무 어려웠어요. 인플루언서가 핵심인데 관리가 안되니 결국 사업을 접어야 했죠.

​이 경험을 화장품에 적용해보니 저희가 만들고 싶은 제품, 기획에 마케팅 포인트를 녹인 상품 없이 남의 걸 가져다 판다는 건 성공 확률을 크게 낮추는 것이었어요. 외부 변수를 통제할 수 없어 상황에 따라 마음에 안 드는 제품을 마케팅해야 한다면 같은 실패를 반복할 수밖에 없잖아요. 그래서 제조와 마케팅을 직접 하기로 했어요.
데일리앤코의 뷰티 브랜드 '유리카' 로고



‘마케팅 강점을 갖고 제조까지 직접 하는 회사’가 데일리앤코라는 건데, 이게 다른 회사와는 어떻게 다른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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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다혜 대표

저희가 말하는 마케팅 강점은 단순히 좋은 제품을 잘 만들어 마케팅으로 판다는 게 아니에요. 기획부터 마케팅 관점에서 출발해 저희만의 시각으로 ‘재해석’된 제품을 만드는 게 차별점이에요. 사실 뷰티 제품은 품질이나 기능적으로는 상향 평준화가 됐어요. 제품은 어느 정도 규모 있는 제조사라면 대체로 잘 만들어요. 

​(중략)

​마케팅 관점을 녹인 슬로건이 정리되면, 콘텐츠로 잘 표현할 수 있는지 검토해요. 이후에는 제품의 관점이 일관성 있게 소비자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네이밍부터 디자인, 영상, 사진, 사이트 등을 가다듬는 작업을 해요. 데일리앤코의 모든 멤버가 제품의 본질과 표현에 집중하는 거죠. 이런 방식은 제품이 나온 이후에 마케팅 포인트를 고민하는 기업의 방식과는 분명히 다르다고 생각해요.

문다혜 데일리앤코 대표


데일리앤코는 어떻게 소비자의 ‘필요’를 만드는 기획을 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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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호 대표

지금이야 그동안 쌓은 경험과 데이터를 기반으로 좀 더 체계적으로 기획을 하지만 처음에는 뷰티 콘텐츠에서 소비자 피드백을 수집하는 걸로 시작했어요. 소비자가 유독 열광하는 콘텐츠에 나온 뷰티 제품을 후보군으로 뽑아 저희 시각으로 재해석할 수 있는 제품을 추렸어요.

​재해석의 단서는 영상에 달린 사용자 댓글에서 주로 얻었어요. 소비자 반응을 하나하나 검토해보면 왜 사용자가 제품에 열광하는지, 어떤 점을 아쉬워하는지 보이거든요. 열광하는 포인트를 살리면서 데일리앤코가 가치를 더할 수 있는 요소가 있다고 판단되면 이후에는 제품을 사야 할 필요성을 정리하고 콘텐츠로 잘 표현할 수 있는지 검토했어요.

데일리앤코의 기획을 통해 탄생한 제품 중 대표적으로 성공한 제품은 무엇인가요. 또 콘텐츠로는 어떻게 표현됐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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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다혜 대표

대표적으로 헤어 실드가 있어요. 이 제품은 앞머리의 볼륨을 고정시켜주는 스프레이인데 소비자 입장에서 필요성이 명확했어요. 슬로건도 ‘오후만 되면 축 처지는 앞머리 볼륨, 뿌리기만 하면 고정’으로 간단하게 정리가 됐죠. 관건은 콘텐츠로 잘 표현할 수 있느냐인데 여성의 공감대를 이끌 명확한 상황 표현이 가능했어요.

사용 전후 효과를 강조한 '헤어 실드' 콘텐츠 영상 화면


(중략)

​스프레이는 남자에게는 굉장히 흔한 제품이지만 여자들은 전혀 사용하지 않는 제품이었어요. 스프레이는 헤어스타일을 단단하게 고정하고 싶은 남자의 전유물이었죠. 하지만 여자도 남자처럼 헤어스타일을 고정할 수 있는 제품이 필요하기는 마찬가지예요. 단, 단단하게가 아닌 자연스럽게 말이죠. 헤어 실드는 이 필요를 공략한 제품이에요. 헤어 실드는 머리 전체가 아닌 앞머리 고정에 집중해 좀 더 전문화된 여성 제품임을 강조했어요. 

​네이밍도 기존 ‘스프레이’가 아닌 ‘실드’라는 단어를 사용해 소비자에게 좀 더 오랫동안 내 머리를 고정시켜줄 것 같은 느낌을 전달했고요. 덕분에 스프레이가 아닌 전혀 다른 카테고리 제품처럼 인식될 수 있었고 전에 없던 여성 스프레이 시장을 만들어 내며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어요.

빅히트를 기록한 데일리앤코의 '헤어 실드' 


대표적인 미디어 커머스 스타트업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동영상에 집중하게 된 계기가 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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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다혜 대표

처음부터 동영상으로 시작한 건 아니에요. 첫 제품은 2016년 2월에 나왔는데 당시 페이스북에서 유행하던 이미지 카드 형태로 콘텐츠를 제작했어요. 제품의 기능과 특성을 깔끔하게 소개하는 콘텐츠였는데 다행히 월 매출이 바로 1억~2억 원이 나올 만큼 충분히 소비자 반응을 얻었어요. 이미지 콘텐츠도 반응이 좋았지만, 곧 영상으로 콘텐츠를 바꿨어요.

​콘텐츠 중심이 이미지에서 영상으로 넘어가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고 저희 제품의 특성을 좀 더 쉽게 직관적으로 표현하는 데는 아무래도 이미지보다 영상이 더 적합하다고 판단했거든요. 영상 콘텐츠를 내자마자 반응은 폭발적이었어요. 엄청난 조회 수와 댓글, 공유를 받았고 매출은 단번에 5배 이상 성장했어요. 이후에는 자연히 영상으로만 콘텐츠를 제작했고요.

데일리앤코가 처음으로 제작한 영상 콘텐츠 '타투펜' 


최윤호 대표

제품을 동영상으로 홍보한 건 저희가 처음은 아니에요. 인플루언서를 통해 영상 콘텐츠를 제작하던 스타트업이 이미 있었어요. 인플루언서가 나와 제품을 소개하는 방식이었죠. 저희는 ‘인물’이 아니라 ‘제품’에 집중했어요. 사용 전후 변화를 보여주는 비포&애프터 방식으로 제품 특성을 명확하게 설명했어요.

(후략)

기획과 콘텐츠가 다르다고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너무 빠른 성공을 만든 거 같아요. 다른 성공 요인은 없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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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다혜 대표

(생략)

창업 초기 데일리앤코 활동 모습 

기존과는 다른 기획과 영상으로 성공 스토리를 썼는데 어떤 위기가, 왜 찾아왔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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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다혜 대표

여러 히트작을 만들고 매출 규모가 커지면서 외부에서 여러 제안과 의견이 들어왔어요. 그중에 저희를 고민하게 한 게 ‘화장품 제조 회사의 기본 제품 라인업을 우리도 갖춰야 하는가’였어요. 쉽게 말해‘화장품 회사라면 당연히 이 정도 제품은 있어야 하는 거 아냐’라는 말에 흔들렸죠. 

​그래서 틴트, 립밤, 수분크림 등 기본 라인에 해당하는 제품을 만들었어요. 문제는 이 제품에서 그동안 데일리앤코가 추구한 ‘재해석’을 하지 못했다는 거예요. 이미 소비자가 필요를 다 알고 있고 대체재가 많은 제품이었는데 ‘화장품 회사라면’이라는 말에 속아 잘못된 판단을 내렸어요.

최윤호 대표

사실 제품과 콘텐츠가 계속 대박을 치면서 회사 역량을 과신한 점도 있었어요. 남들과 같은 제품으로도 충분히 다른 영상을 만들 수 있고 그러면 자연히 제품도 팔릴 거라고 생각했어요. 당시 저희 역량으로는 제품의 차이점이 명확해야 영상에서도 이 차이를 표현할 수 있었는데 말이죠. 결국, 제품 특성에 맞게 영상 기획을 못 했어요. 틴트, 립밤, 수분크림 모두 이런 식으로 접근해 실패했어요.

실패 이후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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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다혜 대표

이 실패가 데일리앤코만의 철학을 확립하는 계기가 됐어요. 이전에는 ‘재해석’이 성공하기 위한 ‘전략’이었다면 실패 이후에는 ‘철학’이 됐어요. 이 철학 위에서 상품 기획을 시작하고 콘텐츠도 구성하죠. 이제는 ‘화장품 회사라면’이란 말에 절대 흔들리지 않아요. 그것보다 ‘데일리앤코라면’이라는 게 더 중요하니까요.


빠르게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었는데 기업을 매각한 이유는 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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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다혜 대표

뷰티 브랜드 ‘유리카’가 성장하면서 다양한 기회가 찾아왔어요. 더 큰 성장을 위해 해외 진출 등 여러 가능성을 타진하는 과정에서 에코마케팅을 만났고 서로의 장점을 더하면 더 큰 성공을 만들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데일리앤코가 압축적으로 빠르게 성장한 만큼 부족한 부분도 분명 있었거든요. 이 비어있는 부분을 채워 줄 든든한 파트너가 필요했어요.

유리카 오프라인 팝업스토어

최윤호 대표

데일리앤코 이전에 투자 유치 기회가 있었는데 받지 않은 적이 있어요. 투자를 받으면 어쩔 수 없이 종속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강했어요. 열정보다는 의무감에 일을 할 거란 두려움이 있었어요. 그래서 투자를 안 받고 어떻게든 사업을 꾸려 나가려고 했는데 잘 안됐어요.당장 돈이 없으니 무리한 수익모델을 만들고 본업보다는 당장 돈 되는 일을 해야 하고. 결국, 투자를 받은 경쟁사에 밀리고 회사를 접어야 했죠.

이 경험으로 사업을 키우는 데는 타이밍이 중요하다는 걸 배웠어요. 적절한 순간에 자금조달을 해 조직 역량을 키워야 한다는 걸 알았죠. 에코마케팅 인수 제안을 받았을 때가 딱 그때였고 좋은 파트너란 판단에 매각 결정을 내렸어요. 에코마케팅을 만난 후 회사 매출이 2배 이상 늘었으니 결과적으로 좋은 결정이란 게 증명된 거죠. 

매각 후 데일리앤코 매출이 100% 이상 성장했는데 그 사이 다른 어려움은 없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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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다혜 대표

2017년 하반기부터 데일리앤코를 모방한 기업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어요. 몇몇 기업은 저희의 제품명과 영상을 정말 그대로 가져다 쓰기까지 했어요. 수많은 미투제품이 쏟아지고 비슷한 영상이 SNS에 넘쳐나면서 광고 효율이 떨어지기 시작했어요. 카피캣의 등장으로 저희의 강점이 희석되는 상황에 돌입했어요.

위기를 어떻게 돌파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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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호 대표

사실 뷰티는 제조 진입 장벽이 높지 않아 얼마든지 새로운 경쟁자가 등장할 수 있는 시장이에요. 그래서 저희 같은 스타트업도 기획과 마케팅 차별화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측면도 있고요. 든든한 모회사도 있고 데일리앤코도 그동안 경험을 쌓았으니 충분히 경쟁우위가 있지만, 그래도 점점 레드오션이 되는 시장에만 머무는 것보다 새로운 카테고리를 확장하는 걸 택했어요. 저희의 기획력과 콘텐츠 마케팅 능력으로 차이를 만들 수 있는 분야로 진입했어요.

최윤호 데일리앤코 대표


새로운 분야는 무엇이고 어떤 기준으로 선택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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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다혜 대표

(전략)

그래서 생활용품 브랜드 ‘마이노벨’을 론칭했어요.

생활용품 시장에서 성과는 어땠나요. 가장 성공한 제품도 소개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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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다혜 대표

다행히 마이노벨 브랜드로 선보인 제품 대다수가 좋은 반응을 거뒀어요. 뷰티에서 쌓은 역량이 생활용품 시장에 잘 적용될 수 있을 거란 예상이 적중했죠. 대표적인 제품이 배수구 청소제 ‘원샷버블’이에요. ‘막히고 냄새나고 청소하기 어려운 배수구, 원샷버블 한 포면 청소 끝!’ 이렇게 명확하게 필요가 정리됐어요. 

큰 성공을 거둔 마이노벨 '원샷버블'


(중략)

​이외에도 잠이 잘 오도록 도와주는 숙면스틱 ‘잠이솔솔’, 옷에 묻은 얼룩을 쉽게 제거해주는 ‘얼룩아웃’, 빨래를 손쉽게 해주는 ‘사르르 런더리’ 등도 히트 상품이 됐어요.


생활용품 시장에 진출하면서 시행착오는 없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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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호 대표

화장품은 대형 업체가 많아 생산에 문제가 없었어요. 반면 생활용품 업계는 생산 공장 설비가 크지 않아 제품 공급이 제때 안되는 거예요. 원샷버블 마케팅을 시작해 주문이 밀려드는데 제품 생산이 안 돼 배송을 못 하는 상황이 발생했어요. 결국, 생산이 2~3주 밀려 주문 고객에게 따로 연락해 사과하고 환불 및 보상을 해야 했어요. 현재는 제조사가 생산설비를 늘려 제품이 원활하게 공급되고 있지만, 당시에는 배송 약속을 지키지 못해 고객에게 굉장히 죄송한 상황이었죠. 


데일리앤코를 창업하며 얻은 사업의 기술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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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다혜·최윤호 대표

(생략)

**이 콘텐츠는 책 <성공력 : 마흔 전에 성공한 사람들의 16가지 사업의 기술>에서 발췌했습니다. 인터뷰 원문은 책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성공력>은 성공한 젊은 사업가 16인의 사업의 기술을 담은 인터뷰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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